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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거리에 활력을 3 - 거리에 정체성을 부여하라[한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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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락한 거리에 활력을 - ③
 "거리에 정체성을 부여하라"
 [2008-05-16 오후 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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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거리의 새로운 획일화


 이런 저런 거리를 만든 국내 수많은 도시들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바로 '획일화'


 거리의 바닥엔 아트타일을 깔고, 간판을 재정비하며, 차보다는 사람 중심의 거리를 지향하는 점까지, A시에서 본 듯한 모습이 B시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특화'에 실패하면서 문화의 거리 혹은 차 없는 거리가 표방한 본래 목적인 시민이나 관광객을 불러 모으지 못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예산만 축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뒤늦게 '거리의 획일화' 문제점을 발견한 다른 지자체들은 앞서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도시와 거리에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마산 오동동 "3·15 정신을 찾았다"


 마산 오동동 '문화의 거리'는 2005년 통영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2001년 4억6천만원을 들여 차 없는 거리로 만든 오동동 문화의 거리가 2005년 4월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다시 도로로 만들자는 논란이 붙었기 때문이다. 상인 72%가 차량 통행 재개를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당시 중앙간선도로(충무데파트-항남오거리) 걷고 싶은 거리를 추진하던 통영시로선 마산 오동동의 실패 사례를 들이대며 "상권 다 죽인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3년이 지났다. 어떻게 돼있을까? 마산 오동동은 '문화의 거리'로 유지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3년 전보다 업그레이드됐다.


 오동동상인연합회는 당시 논란 과정에서 단순한 차 없는 거리, 아트타일로는 이용객을 끌어들일 그 무엇이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정신적으로 마산, 특히 오동동을 결속시킬 무엇이 필요했다. 그 대안이 '3·15 정신'이었다.


 오동동은 3·15 의거의 발원지.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맞선 마산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뜨거운 함성을 거리 곳곳에 담았다.


 여기에 마산 5미(味) 가운데 3미인 '아구찜, 복요리, 통술' 등 먹거리를 '거리 벽화'로 살려냈다. 맛이나 질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는 2% 이상 부족했던 것.


 지금 오동동 거리 벽면엔 '아구들이 헤엄치고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갖가지 색의 옷을 입은 아구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있다. 물론 그 옆에선 복어 떼도 보인다. 이 아구, 복어떼를 따라, 관광객들이 아구찜집, 복집으로 몰려들고 있다.
 
 대구 "대구엔 볼거리가 없다?"


 대구광역시의 고민은 "볼거리가 없다"는 관광객, 심지어 시민들의 불만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대구시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기뻐할 틈도 없이, 대구를 대표할 얼굴을 찾고자 부단히 고심했다.


 그 결과 400년 영남의 수도 '경상감영(慶尙監營)'을 모티브로 발굴했다. 경상감영과 관련된 동성로(東城路), 약령시(藥令市), 근대문화골목 잇기를 통해 이를 표출하고 있다.


 동성로 걷고 싶은 거리는 이미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한 대구백화점-대우빌딩 600m를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블록으로 꾸미고 곳곳에 미니공원, 상설 공연장을 설치한다. 이 동성로에서 길 하나를 건너 옛 남성로 '약령시(藥令市)'로 이어진다.


 대구 약령시는 1658년 효종 9년부터 350여년을 거치면서 한약재 공급의 중심지가 된 곳.


 한방관련용품 300여 점을 전시한 대구약령시전시관이 한방족탕체험, 한방무료진료, 한방삼계탕 등 즐길거리, 먹거리를 개발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약령시는 다시 감영 성밖의 근대문화골목과 이어진다. 근대문화골목은 천주교의 영남지역 전파, 독립운동사와 연관된 건물과 건물을 잇는다.
 천주교 유적을 대표하는 계산성당(1899년 건축), 제일교회(1933년), 서양식 선교사 주택, 이상화고택, 독립운동가 이상정고택, 국채보상운동주창자 서상돈 고택 등이 대표 유적. 


 김명주 중구청 공공디자인팀장은 "동성로, 약령시, 근대문화골목은 종전까지 각각 분리된 공간으로만 존재했다. 앞으로 관광객들이 이 3곳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먹고, 보고, 즐기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그 근원은 모두 400년 영남의 수도 경상감영(慶尙監營)과 맥이 닿는다"고 설명했다.
 
 통영 도천동 "윤이상을 특화하라"


 대구 봉산문화거리는 고서적상 몇 곳이 있던 봉산을  '문화거리'로 육성하면서, 화랑과 갤러리 30여 곳, 고서적전문점, 재료상 등 100여 곳이 밀집한 거리로 거듭났다.


 이밖에 전북 전주는 '한옥마을'과 연계한 거리, 김해는 '가야의 거리' 등 지역색을 살린 특화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천동에는 무엇이 있는가? 윤이상 기념공원과 페스티벌하우스가 있다. 2곳 모두 '작곡가 윤이상'과 인연이 깊다.


 윤이상이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윤이상을 기념한 세계적인 통영국제음악제의 프린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부럽다", "우리도 그런 게 있었으면" 이번 기획 취재를 방문한 도시마다 '윤이상기념공원'과 '페스티벌 하우스'라는 소재와 이 2곳을 연결하는 거리의 특별한 의미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부러움과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마산 아구찜 골목 벽화를 연출한 공공미술연구소 프로젝트 쏠 신종진 사무국장은 "윤이상은 통영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특히 윤이상과 관련된 곳이 2곳이나 있는 도천동은 윤이상으로 특화하면 성공한다. 앞으로 윤이상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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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 부럽다"

20080516141035_QkT5JxBh3hg.jpg 오동동상인연합회 조용식 회장.오동동상인연합회 조용식 회장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너무 많은 자원을 가진 통영이 부럽다."
 오동동 문화의 거리를 선도해온 조용식 오동동상인연합회장은 관광자원화할 문화, 예술분야 인적 자원에 대해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가고파'의 이은상, 조각가 문신이 있지만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모두 열린 거리로는 나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2005년 오동동 문화의 거리 '차량통행 재개 논란'이 통영에 타격을 줬다는 말에 "그랬느냐"며 "당시 차량 통행 논란이 오히려 약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논란 덕분에 마산시민과 관광객이 오동동으로 찾아와야할 정신적 명분으로 3·15정신을 도출할 수 있었고, 아구 벽화로 상권을 활성화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왜 오동동으로 가야하느냐?"고 물으면, "마산의 정신 3·15의 발상지 아니가"하고 답하고 "볼거리, 먹거리가 무엇"인지 질문하면, "아구찜 거리로 한번 와봐라"고 추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냥 △△거리가 아니라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거리도 특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용식 회장은 "마산 사람인 나도 '윤이상'을 안다. 도천동 걷고 싶은 거리의 아이콘으로 '윤이상'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윤이상 거리로 특화해라"

 

20080516141135_4zb6AGNTOgDgr.jpg 프로젝트 쏠 신종진 사무국장.프로젝트 쏠 신종진 사무국장

 

 "통영, 특히 도천동 거리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마산시내 젊은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공공미술연구소 프로젝트 쏠 신종진 사무국장은 '거리의 정체성'을 거듭 강조했다.


 "오동동 아구찜, 통술골목은 70년대 마산 지역민들의 애환과 정겨움이 담겨 있는 곳"이라며 덕지덕지 지저분한 벽보와 음식물 쓰레기가 방치되던 곳을 벽화를 통해 '아구떼가 돌아다니는 골목'으로 바꾼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 오동동 문화의 거리로 만들 때 이점을 간과해 그냥 차 없는 거리, 새로운 아트타일과 가로등 등의 개념으로만 접근했다"고 지적한 그는 "벽화와 전시미술을 통해 마산, 특히 오동동의 정체성을 살려내고자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한때의 주부와 여학생들이 실제 아구와 똑같은 크기의 아귀들이 벽을 타고 춤추듯 꿈틀거리는 벽화를 카메라 혹은 핸드폰으로 찍느라 한바탕 소동이 인다.


 "동피랑 벽화 그리기에 참가하기 위해 뒤늦게 통영을 갔었는데, 인원이 넘쳐 기회를 갖기 못했다. 동피랑이 서민과 바다, 음악을 표출해 성공한 것처럼, 윤이상기념공원과 페스티벌하우스를 가진 도천동은 '윤이상'을 담아내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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