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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돌아왔다] 4. 남양주 부엉배마을 - 형님… 동생… 마음의 벽 허물고 모두가 ‘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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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돌아왔다] 4. 남양주 부엉배마을 | ||||||||||||||||||
형님… 동생… 마음의 벽 허물고 모두가 ‘일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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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작가·주민 함께 ‘미술프로젝트’… 이정표·벤치 등 설치하자 ‘마을 새생명’ 가끔 갈등도 있지만 끈끈한 유대감… 오해는 이해로 이기는 배려로 ‘한마음’ 주민 스스로 ‘반상회’ 만들고 현안 머리맞대 부엉배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45번 국도변에 있다. 마을로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인 덕소에서 대성리 방향은 마을에서 나올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 있는 신호가 없어 불법 좌회전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직진을 하다보면 부엉배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지난 2009년부터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차가 지나간 뒤에는 뿌연 먼지로 휩싸였다. 삼봉리는 크게 구봉과 부엉배, 재재기라는 세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인구 집중도에 따라 마을회관, 노인회관 등 각종 인적·물적 시스템은 구봉마을에 집중돼 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부엉배와 재재기는 행정의 관심에서 배제돼 왔다. 10여년 전에는 마을 주민수가 많지 않았지만, 최근들어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주민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는 주민의 80% 이상이 외지인일 정도다. 자연스럽게 민원 창구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이를 계기로 마을 주민 스스로 ‘반’을 만들게 된다. 마을에서 30년 넘게 돼지를 사육해온 김윤신씨(64·여)는 “예전에는 쓰레기차조차 오지 않아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바람에 마을 전체가 쓰레기장이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부엉배마을은 상수원보호구역, 군사보호구역, 그린벨트 등 수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주민들은 “내 집앞에서 삽만 들어도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스스로 반을 조직한 주민들은 매달 한 번 반상회를 열어 마을의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구간마다 볼거리, 쉬어갈 곳 만들어 009년 물 맑고, 공기 좋은 것 말고는 자랑거리가 없던 이 곳에 새로운 자랑거리가 생긴다. 마을 곳곳에 예술가들이 그리고, 만들어낸 미술작품들이 설치된 것. ‘마을미술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남양주가 고향인 한 조각가에 의해 시작됐다. 남양주 이패동과 연천 동막골 등지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종희 작가(43)가 그 주인공이다. “2005년부터 시작한 공공미술프로젝트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는 접어두더라도 가장 아쉬운 것은 기간이 정해져 있어 언젠가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죠.” 2008년 그는 작업실을 통째로 삼봉리로 옮겨와 스스로 마을 구성원이 됐다. 곧이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미술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이 작가는 2009년 문광부 ‘마을미술프로젝트’에 공모를 했다. 결과는 좌절, 1차 심사는 통과했지만 아쉽게도 2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남양주시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힘을 실어주겠다고 결정하면서 이 작가의 꿈은 기사회생하게 됐다. 프로젝트는 남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 작가는 프로젝트의 단발성, 주민참여 부족 등 공공미술프로젝트의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작가집단만의 작업이 아닌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이 그동안의 소외감 때문인지 미술프로젝트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였죠.” 프로젝트는 ‘부엉배’라는 마을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작품의 제작, 설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작가와 주민이 함께 했다. 반상회는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대화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는 소통의 장이 됐다. 마을입구에는 마을의 상징물인 부엉이 형상이 설치되고 마을길 구간 구간마다 거북이나 물고기, 새, 무당벌레 등 재미있게 형상화한 이정표들이 세워졌다. 또 산책길 곳곳에 미적 조형이 가미된 아트벤치가 놓여져 지나가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으며, 우체통과 게시판, 정자도 설치됐다. “마을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예산만 지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이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순덕 남양주시 디자인계획팀장의 말이었다. 주민들은 이 팀장은 자신들의 ‘멘토’라고 불렀다.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 ‘삶의 활력’ 개월여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게 많은 것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관계의 재생 즉, 소통의 풍요로움을 주민들 스스로 인식하게 됐다는 데 있다. 자연히 집집마다 문이 활짝 열렸고, 스스로를 가둬뒀던 마음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9년째 살고 있는 김근호씨(58)는 “프로젝트를 끝난 뒤의 마을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전에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어요. 심심하고 무료한 일상의 연속이었죠. 이제는 다 알아요. 누가 뭘 잘하고, 어떤 성격인지. 마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졌죠.” 일단 소통의 맛을 본 주민들은 일상속 소통의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이 작가의 아이디어가 보태져 ‘수다방’이란 것이 탄생하게 된다. 수다방은 말그대로 언제 어느때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이와함께 수다방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되고 있다. 도예가를 초빙해 생활다기를 만들기도 하고, 밥을 준비해 놓고 주민들이 각자 집에서 반찬 하나씩을 준비해 와 나눠 먹는 ‘pot luck party’를 열기도 한다. 또 지역의 전문가를 초빙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뭐든 물어봐’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식당운영으로 노하우가 쌓인 마을 주민 박호익씨를 초청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등어 구이 만드는 법’을 다함께 배우기도 했다. 현재 수다방의 대표는 이종희 작가다. 운영비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충당되고 있다. “앞으로는 수다방 운영을 마을분들에게 넘길 겁니다. 또 작은 수익사업들을 개발해 자체 운영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수다방이 이 마을의 활력소가 되는 거죠.”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민들레사업단’ 발족
사업성 있는 상품을 발견하기 위한 논의는 2009년 겨우 내내 계속됐다.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밭을 소유하고 있었고, 밭을 경작지로 이용해 온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밭 작물이 거론됐다. 해바라기와 민들레가 후보로 제시됐는데, 결국 채소와 약 그리고 꽃까지 얻을 수 있는 민들레가 최종 상품으로 결정됐다. 공동경작지로는 마을 주민 서용재씨와 안종률씨가 9천900여㎡의 땅을 3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남양주 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해 민들레에 대한 파종과 재배 기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고, 마침내 지난해 8월, 26명의 주주(마을 주민)들이 1천680만원을 출자해 창립총회를 거쳐 사업단이 발족했다. 서용재 법인 총무이사(58)는 “주민들은 온 천지에 민들레꽃으로 가득한 부엉배마을을 상상하며 좋아했다”며 “아직 많은 수입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지만 마을 주민들이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데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조금·인건비 집행 과정 생각지 못했던 이견 난 5월 민들레사업단에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지원금이 떨어졌다. 민들레사업단이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하는 마을기업육성프로젝트에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이 민들레사업단내 갈등을 야기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0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안문자씨(65·여)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솔직히 민들레 사업에 들어올적에는 주민들하고 같이 어우러지려고 들어왔지. 돈 생각하고 들어온 게 아니거든. 그런데 지금 보면 그게 아니야. 민들레 사업도 여기 따로 저기 따로야. 많지도 않은 사람중에서도 갈라지더라 이거지.” 애초 민들레 사업이 주민들의 봉사로 진행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원금이 나오고 인건비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대부분이 노령인지라 누구는 일을 해 돈을 받고 누구는 일을 못해 돈을 못 받는 일이 벌어진 것. 지원금으로 개인의 사적 재산을 구입하도록 요구하는 주민도 생겨났다. 또 사업이 보다 구체화 되고 수익이 발생하면서 이 사업을 크게 벌리는자는 사람들과 처음 시작이 그랬듯이 마을 주민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데 머무르자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이같은 갈등이 발생하자 사업단은 외부컨설팅업체를 불러 조언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이 작가는 “갈등도 부엉배마을 사람들이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당연히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며 “개인의 이익보다는 소외 문제와 지역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대의, 다시말해 초심을 잃지만 않는다면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삼봉리는 광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이 작가는 이에 착안, 마을 사람들끼리의 ‘일촌맺기’를 계획하고 있다. “예전 집성촌일때는 모두가 아저씨고 아줌마였죠. 하지만 집성촌은 배타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엉배마을처럼 외지인들이 대다수인 곳에서 모두가 일촌이 된다면 개방적이면서도 알찬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을 어귀에는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하면서 세운 큰바위 얼굴 모양의 우체통이 서 있다. 아직은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만, 이 작가의 바람대로 마을 주민 모두가 일촌이 되어 서로 가슴 따뜻한 편지들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윤철원기자 ycw@ekgib.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ekgib.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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