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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돌아왔다] 3. 수원 행궁동. - 華城과 공존 통해 ‘삶의 터전’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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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돌아왔다] 3. 수원 행궁동
華城과 공존 통해 ‘삶의 터전’ 부활하다
1028252518_shSljqJv_72ae88dbbca905235451c45254059f948f6c3730.gif2011년 07월 07일 (목)류설아 기자 1028252518_3tyqU0WV_b4c413201379cbd72ca9e7c4cef51573b852b80f.gif rsa119@ekgib.com1028252518_tcwDRzQV_092be9036186cad2456e0772f1696a7659b37634.gif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규제 강화 

신·증축 금지되자 하나둘 마을 떠나 

인적 끊긴 골목 쓰레기만 나뒹굴어

서울 인사동 같은 전통거리 만들자 

남아 있는 주민들 자발적 운동 움터 

폐가는 찻집으로 골목은 벽화치장

  
1. 행궁동 레지던시 입주 작가와 주민, 관광객 등 1천42명이 타일에 그린 그림
을 모아 완성한 서양화가 나혜석 자화상. 현재 레지던시 건물(구 불교백화점)
외벽에 설치돼 있다.
2, 3.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기 전, 후 골목길 풍경
  
우리나라와 수원의 세계적 자랑인 세계문화유산 화성. 그러나 정작 성 안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수원 화성이 감싼 과거 팔달구 팔달동, 남향동, 신안동 등은 ‘팔부자 거리’로 불릴 정도로 재래시장과 금융·쇼핑·문화 시설 등이 위치한 수원 번화가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더불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3층 이상 건물의 신·증축이 금지되고 성곽 복원에 모든 정책이 집중되면서 활기를 잃어버린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성 안 주민들은 동네를 떠났고 빈집은 늘어만 갔다.
결국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2009년 기준 1만3천 여명)에 화성 성역화 사업에 따른 성곽 내 체계적 동 관리 등의 이유로 지난 2007년 경기도 최초 통합동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행궁동으로 묶였다.

처음엔 “뭣하러 낡은 집에 돈들이냐” 핀잔

두 떠난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건 남은 사람, 그들은 통합된 각기 다른 성격의 동네가 진짜 소통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되기를 꿈꿨다.

수원 토박이 조각가 이윤숙 씨도 성곽 안 동네의 ‘부활’을 꿈꾸는 이였다.

“구체적 정책은 공개되질 않고 성 안 마을을 민속촌처럼 재개발한다는 말만 무성했지. 그런 소릴 듣고 주민들은 집이 허물어져도 수리도 하지 않고 사람 떠난 골목길에는 담배꽁초만 쌓이고…. 터전을 떠나 잘 사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잖아. 예술가를 끌어들이면 성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좀 더 멋진 마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는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했던 남편 김정집 씨와 함께 지난 2005년 시부모가 살았던 행궁동(옛 북수동)의 40여년된 일본식 한옥을 미술전시 및 체험공간 형식인 ‘대안공간 눈’으로 고쳐 운영에 들어갔다. 수 년전부터 기자를 만나면 입버릇처럼 ‘인사동 거리 같은 수원의 문화예술거리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주장을 실현한 첫 걸음인 셈.

혼잣말이 아니었다. 그는 이웃들이 ‘뭣 하러 낡은 집에 돈 들이냐’는 말에 화성 관광과 지역 문화예술을 연계하면 주민과 작가, 그리고 관광객이 소통하는 멋진 마을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의 말을 들었고, 또 같은 미래를 꿈꿨다. 그리고 2007년 결실을 맺었다. 이 조각가의 의견을 공유한 수원의제21추진협의회를 비롯해 수원KYC, 수원민예총, 극단 성, 주민 등이 '행궁길발전위원회'를 구성한 것. 

특히 이때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진 것과 그 계기를 눈여겨볼 만 하다. 당시 화성 성역화 복원 과정에서 화성 행궁 앞의 주택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우체국 등이 무너지면서 지금의 넓은 광장이 생겼다. 동시에 자동차 길도 사라졌다. 광장 인근의 상인과 거주민들은 생존과 직결된 길을 확보하기 위해 뭉쳤다. 데모하려고 만난 사람들은 한 공무원의 ‘귀띔’(효과적인 방안을 냈던 그 공무원의 이름과 소속은 취재과정서 밝혀지지 않아 아쉽다.)과 도움으로 시에 민원을 제기했고, 최소 6개월을 예상했던 자동차 길은 2개월여 만에 다시 생겼다.

그것은 떠날 생각만 했던 주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의 빛이됐다. 생존의 절박함에 나섰던 주민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행궁길사람들’이라는 민간단체도 만들어졌다. 주민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려는 과정을 거쳐 사람 냄새 나는 마을 만들기에 적극 나선 것이다.



주민·시민단체·예술가·행정가 희망 싹틔워

주민 사이에서 작지만 희망이 퍼지는 분위기에 시민단체인 ‘수원의제21’이 불을 지폈다. 주민 스스로 정부의 ‘참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설득, 합류한 것. 주민과 시민단체, 예술가, 행정가 등 누구보다 마을에 애착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 그러나 각기 따로 다른 방법으로 살았던 주체들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들은 곧 행궁길의 낡은 간판을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전통미를 가미한 간판으로 교체했다. 예술가들이 머물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빈 상가를 리모델링해 전시공간이 있는 ‘한데우물길창작촌’도 조성했다.

주민들의 요구에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감독)’의 촬영지로 우물터만 남아있던 ‘한데우물’은 복원중이고, 철거가 예정돼 있던 행궁동 옛 불교백화점 건물은 ‘화성 역사문화마을만들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거점으로 예술가들이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퇴락하는 구도심의 전형이었던 행궁동내 옛 북수동 골목길이 주민과 국내외 예술가가 함께 그린 형형색색의 벽화를 통해 이색적인 거리로 변신한 것도 대표적 예다.

  
4. 빈 집과 상가가 사라진 행궁길.
처음에는 무관심하고 귀찮아하던 (대부분 노인인)주민들이 직접 밑그림을 그리거나 “나는 능력이 없으니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며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로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렸고, 지금은 맛있는 음식은 물론 앞뒤 마당에 열리는 과일과 꽃을 나누는 진짜 이웃이 됐다. 

또 사진 찍을 곳이 생기니 이 골목길을 외면했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인근 음식점의 매출도 늘어날 수 밖에. 상인들은 다시 동네 문화예술행사에 술과 음식, 현금 등을 내놓는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섰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됐다.

문화·예술·전통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재탄생

처럼 2~3년간 각종 전시와 예술체험교육, 문화예술거리조성 사업 등을 통해 생기를 잃었던 빈집에 젊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관람자에 그쳤던 주민들도 더불어 창작자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 수원의제21 사무국장이었던 이근호(현 수원르네상스센터장) 씨는 “행궁동 마을만들기 효과라면 행궁길 빈집이 없어진 것”이라며 “2007년에 8개 빈집을 활용해 미술전시를 한 후 공방이나 갤러리, 찻집 등이 차서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각종 프로그램과 사업의 수혜 대상이 1.37㎢ 규모의 행궁동 전체에 고르게 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주로 행궁길을 중심으로 한 행궁동 마을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행궁동이지만 과거의 다른 행정동이었던 주민들의 무관심과 냉소, 불만도 존재한다.

통합되기 이전의 동네, 이제는 행궁동이 됐지만 그렇게 타의로 묶인 여러 동의 사람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중심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키워드가 수원 행궁동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이다. 마을만들기 초기단계부터 문화예술을 매개로 했던 행궁동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다. 이미 미술 분야 젊은 작가들이 대거 입주해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이 진행되고, 특히 행궁동에는 나혜석 생가터가 존재하기 때문.

이에 지난 4월 행궁동에서 열린 ‘제3회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는 작가와 시민단체가 중심이 됐던 기존 예술제와 달리 주민이 주축이 됐다. 주민으로 구성된 행궁길발전위원회와 신안지구발전협의회, 남향발전협의회 등이 주관한 것이다.

이 예술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년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애정을 쏟았던 주민들의 진보한 의식은 눈부시다. 주민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예술제 전문 기획에 소정의 급여를 지급하면서 외부 전문가를 초빙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한 공문 작성과 결과보고서 등 행정 업무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세부 프로그램 운영은 예술가에게 각각 요청했다. 주민, 예술가, 행정, 시민단체 등 4개 톱니바퀴가 균형감 있게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이와 관련 이근호 사무국장은 “수원 행궁동보다 더 멋지게 변한 마을도 많고 성공사례도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의미있는 것은 각 주체가 적절한 역할을 분담하고 원활한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자비 턴 주민·지원 아끼지 않은 수원시 ‘합작품’

처럼 주민이 주체가 된 행궁동 마을만들기는 최근 날개를 달았다. 수원시가 올해 제2·3의 행궁동 마을을 주민의 손으로 만드는 분위기 조성 및 지원을 위해 민간위탁시설인 ‘마을르네상스센터’를 개소했고, 이에 앞서 관련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센터는 이달부터 주민들이 실행하는 각종 공모사업도 추진한다. 이미 경험했던 것들이어서 지원대상으로 선정되고 사업 추진 등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행궁동은 일부 지역에 불었던 바람이 동 전체로 들불처럼 번질 수 있을지, 또 그 성과로 관광객들이 밤낮없이 드나들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면 그 소란을 감수하면서 마을 주민 모두가 행복할지 등 그 끝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시작점에 섰다.

“당연히 주민들끼리도 의견충돌과 불만이 있죠. 그래서 매달 정기 회의를 합니다. 지난 해 9월부터 매주 주민들이 화홍문 광장 부근을 청소하는 것처럼 느리지만 좋은 변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에서도 마을만들기 사업 관련 회의를 낮에 하는데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참여하겠습니까. 이런 문제부터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직도 많아요.”

박영순 신안지구발전협회의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는 행궁동의 변화를 벤치마킹하거나 취재하는 이들의 예상과 달리 성과를 쏟아내기보다 담담하게 각종 문제와 딜레마를 끄집어낸다. 행궁동의 변화는 박 사무국장처럼 주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화려하기보다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는 행궁동 사람들에게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류설아기자 rsa11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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