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알고 싶다] 안산 이필구 센터장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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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민조직화와 교육에 대해선 아까 말씀하셨던 마을연구소가 관련이 있을까요?
사실 마을연구소라는 개념은 일본의 스즈카 공동체에서 따왔습니다. 이 공동체에서 원칙으로 삼은 게 실천연구와 교육입니다. 싸이엔즈라는 명칭으로 연구소를 설립을 했는데 이 연구소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도표잡고 그런 연구가 아니에요. ‘생활실천연구’입니다. ‘공동체가 뭘까, 친한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이런 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거에요. 연구소에 연구원들이 한 열댓 분 계시는데 이분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연찬이라는 걸 해요. 이 연찬을 계속 하다가 한 달에 한 번은 살롱을 합니다. 정해진 주제에 대해서 한 명이 발표를 하고 서로 코멘트를 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 하는 거에요. 이런 과정을 통해 정해진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의 글을 만들고, 그 글에 자신들의 생각이 다 들어있는 거에요.
제가 봤던 글이 ‘친한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라는 글이었어요. 처음 봤을 땐 ‘이런 간단한 주제로 연구를 한단 말이야?’ 했는데 글을 보고 굉장히 깜짝 놀랐어요. 이 분들이 정의한 친한 관계는 ‘ 필요한 곳에 물자와 사람이 흘러가는 관계’라고 정의를 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돈이 필요하면 돈이 흘러오고, 제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면 와서 같이 도와주고. 이게 친한 관계라는 거에요. 이런 실천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또 교육으로 나와요.
이런 관점에서 마을연구소를 한다면 ‘마을이 뭘까?’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굉장히 많은 토론이 필요해요. 그래야만 그 과정 속에서 공동의 목표와 비전이 생성 되고, 이 공동의 목표와 비전이 세워지면 사업을 할 때 얼마든지 같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이런 과정 없이 사업중심이 되면 그냥 그때 그때마다 닥치는 일을 풀어내는 방식이 되는 거에요. ‘우리가 갈 길은 저거였어’라는 공동의 목표와 비전이라는 것이 토론을 통해서 합의가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업이 힘을 받을 수 있어요. 결국은 이런 체계를 만들려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그렇다면 내년에 진행할 마을연구도 말씀하신 연찬이나 살롱의 형태가 될까요?
궁극적으로는 그런 형태를 지향하고 있어요. 마을연구의 핵심은 마을중심정책과 방향연구라고 봐요. 거시적으로 사회 흐름을 살피고, 자기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장이 필요합니다. 또한 작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양한 관계 맺기에 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연구는 주민 활동가와 실천연구자들이 함께 하게 될 거에요. 주민들끼리 논의하는 장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외부 분들이 오셔서 같이 경험치를 나누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또한 제도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실천연구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행정에서 뭐만 하면 용역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용역은 찍어내는 상품 같아요. 용역을 진행하는 연구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실천연구자는 거의 없습니다. 이론적 연구도 필요 하지만, 실천 연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실천연구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소의 중요한 역할일 겁니다. 안산은 지역에 대학이 네 개나 있고, 지역에 관심 있는 교수들, 전문가들도 계시니까 이분들과 이런 장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Q. 내년 안산센터는 <전국마을박람회>를 통해 안산 마을만들기 운동의 10년 역사를 정리할 예정인데요, 안산센터, 그리고 안산의 마을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값진 성과는 무엇일까요?
안산은 만들어진 지 30년 된 계획도시입니다. 30년 동안 외지인들이 모여 76만의 도시가 되었어요. 이런 이유로 어느 지역보다 향우회가 활발하고, 각종 모임이나 단체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안산을 뜨내기들의 도시로 규정 하기도 합니다. 안산의 마을운동은 이런 점에 잘 착안해서, 도시라는 큰 그릇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만들고, 주민들간의 관계 맺는 공동체 운동의 실험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 결과로 현재의 마을지원센터도 마을 운동의 구심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마 도시재생센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들을 안산에서는 마을센터가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사2동 마을계획을 하면서 도시활력사업을 가져와 주민들과 하드웨어를 고민하는 것처럼 그런 모델을 만들어내면서 계속 연구해왔던 것이 안산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난 제주워크샵에서 17년도 정책 워크샵을 진행하셨어요. 이 자리에서 ‘기본생활권’이 마을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정리되었는데요,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또, 이에 대해 앞으로 중간지원조직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지금 제도권은 한계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근대화 이후 패러다임에 동맥경화가 일어난 상태에요. 그 동안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청년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제도권이 갖는 가치나 방향이 변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마을중심정책은 가치와 제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동맥경화가 걸린 한국사회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숨통을 틔게 할까. 이런 고민들이 제도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치와 제도라고 하는 두 가지 축이 마을 정책으로 녹여져야 하는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때 중간지원조직은 스스로의 역할과 이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는 그 다음에 오는 방법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정리 없이 일 중심, 과업 중심, 사업중심의 조직이 된다면 행정의 하부조직으로서 전달체계가 될 뿐입니다.
시민사회가 확장된다는 의미는 단체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성을 갖게 된 주체들이 확장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얼개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동네 단위에서 사람살이의 얼개가 만들어지면서 사회 안전망이 더 굳건해지는 거죠. 시설이니, 보편적 복지니 이런 것을 넘어서서 마을 안에서 주민들 스스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상상을 촉진하고 촉발하는 곳이 중간지원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단계를 구상 했던 이유는, 공익적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실제 사회적 일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자기 돈 내고 끼리끼리 모여서 해도 되지만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확장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자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인 시민을 성장시키는 일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이 제도가 완성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행정이 하면 될 일입니다. 실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은 늘 변화해야 하는 불완전한 체계임으로 제도권을 흔드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중간지원조직은 사실 제도권 안에 있는 조직입니다. 제도권 안에서 제도권을 흔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마을 운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저는 방점은 제도권 바깥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1년만 일해 보면 현장에 빨려 들어갑니다. 주민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토론하는 게 아니라 과업을 가지고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사업이 아니라 비전 입니다. 자기 삶, 자기자신, 자신의 마을에 대한 비전. 비전을 나누고 심어주는 것이 마을센터가 해야 할 역할이며 숙제입니다. 제도권 안에서 제도권적 발상만으론 비전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제도권 바깥에서 하는 변화의 상상, 이것이 중간지원조직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Q.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이하 ‘한마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보통 연합회는 이익집단으로 가기 쉽습니다. 제가 속한 YMCA도 설립된 지 100년이 넘어가니 지킬게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야 유지하고 확장할지에 관한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킬게 많으면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보수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한마연은 마을운동의 대변자 역할을 맡고 있기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듯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일 중심으로 논의를 하기 때문에 형식화되기 쉬워요.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일을 매개로 하지만 일 중심을 넘는, 활동가 중심의 기획이 필요합니다. 뜨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힘들다가도 같이 얘기하면서 ‘그래, 그래도 할 만한 일이야’ 라고 뜨겁게 느끼는 것이 비전입니다. 이런 뜨거움을 활동가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현장에서 주민들이 느낄 수 있을까요? ‘한마연이 해주세요’가 아니라, (웃음) 이를 추동 해내는 역할을, 이런 기획을 함께 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을중심정책’이라는 용어는 잘 정리했다고 봐요. 국가중심정책에서 마을중심정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동 해내고 중요 과제로 끌고 가는 것은 몇 년이 걸릴 지 모릅니다. 이걸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스피커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생각을 깨고, 협력과 교류를 통해 마음을 흔드는 일 등이 한마연으로 묶인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처음 센터가 만들어지면 과업 중심으로 가기 쉽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혹은 우리 지역에 일단 필요하니까, 그리고 센터가 만들어지는 순간에는 행정과 함께 하기 때문에 과업 중심으로 흘러가는 거죠. 이 사이클을 벗어 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우리 조직의 비전과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리더그룹, 센터 운영위원회일수도 있고, 핵심 활동가 모임 일수도 있는데, 핵심 멤버들은 이 고민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못되고도 중요하지만 방향은 놓치지 않으려고 해야 해요. 방향이 없다면 굳이 이것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거죠.
Q. 앞으로 이필구 센터장님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까요?
YMCA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마 죽을 때까지 YMCA 운동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거창하고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엔 관심이 크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가 운동가인가 라는 질문을 품고, 운동가로서의 성장을 이루고 싶습니다. YMCA운동가의 필요조건이 사회적 영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성은 사회 안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가기 위해선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없이 혼자 도 닦으면서 살 수는 없다고 봐요.
90년대 시작된 마을만들기 운동이 10년쯤 지났을 때 마을운동을 정리했던 문구 중 지금도 고민하는 것은 "마을이 세상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학습이 방법이다. 관계가 관건이다." 입니다. 이 숙제같은 글을 지역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삶, 그것이 아마 제가 꿈꾸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마음이 지역에 와보니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할 때는 일단 안산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턱 막히잖아요. 실제로 안산으로 일터를 옮길 결정을 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도 세월호 였어요. 세월호 피해 지역에서 마을운동, 참여운동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세월호 이후’라는 새로운 비전을 세우기엔 지역 활동가들이 많이 지쳐있어요. 지난 2년간 이 정도로 끌고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이후 안산은 생각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다 라고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세월호 이후의 안산을 꿈꾸고 추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세월호 정신을 살려야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의 최대 피해자인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까. 청소년이, 주민이 가만있지 않는 구조, 자치적인 구조를 어떻게 만들까가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소년의 자치와 자율이라는 시민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마을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청소년의 주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청소년 스스로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을마다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죠. 청소년아지트, 청소년이 놀만한 곳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직접 해보는 사회적 경험을 늘려가면서 기존의 주민자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해야 할 일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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