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알고 싶다] 안산 이필구 센터장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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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안양YMCA에서 시민사회운동 실무자로 일을 처음 시작했고, 2006년부터 올해까지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사업국장을 하다가 올 7월에 안산으로 왔습니다. YMCA 활동가로서 지역에서 10년, 전국연맹에서 10년, 활동한지 올해로 딱 20년이 되어서 2월부터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있던 차에 안산YMCA에서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YMCA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회운동을 경험했습니다. 등대생협운동을 시작으로 마을, 소비자, 환경, 교육운동의 주체를 세우고, 역량을 강화하는 운동과 정책을 고민하고 다루는 일들을 했습니다.
90년대 초반 YMCA는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역에 기반한 시민들의 참여문제, 지역의 역량강화 문제를 중점으로 다뤘어요. 당시 한국YMCA는 ‘21세기 지역사회만들기운동’을 슬로건으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여러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만들기 운동도 그런 차원에서 시작되었어요. 당시 “아름다운 마을만들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실무진들끼리 진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마을만들기는 무엇인가? 마을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인가? 도시에 마을공동체가 가능할까? 마을은 공동체인데, 그러면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형식을 만들고 마음을 모아가는 것이 마을인가? 사실 도시에서 마을을 만든다는 발상이 당시로선 허무맹랑한 생각이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토론의 결과로 정리된 것은 마을운동은 단순한 사업이 아닌 운동의 지향점이라는 겁니다. 보통 풀뿌리 운동을 설명할 때 풀뿌리는 운동의 주체이고, 마을은 운동의 방향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Q. YMCA에서 중간지원조직으로 오셨는데, 다른 점이 있나요?
저는 여전히 YMCA 운동가에요. 중간지원조직으로 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센터장을 맡고 있지만 비상근이고요. (웃음) YMCA연맹에 있을 때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고민과 구상을 많이 했었어요. 서울NPO센터 만드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중간지원조직이란 시대가 발전할수록 만들어져야 할, 시민운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의 토대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구조적으로는 중간지원조직을 행정과 시민을 중간에서 잇는 개념 정도로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완충의 역할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견을 보다 행정에, 제도권 안에 반영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런 이유로 수동적인 대응이 아니라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조금 더 주도적인 역할이 되어야겠죠.
사회 서비스의 전달체계가 아닌, 조직을 만드는 조직으로서의 역할, 사람을 키우는 조직으로서의 역할, 적극적으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 등 이런 부분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저는 사회운동가로서나 YMCA활동가의 역할이 중간지원조직 센터장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Q. 안산센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처음 안산센터 만들어질 때부터 사람들을 알고 있었어요. 6-7년 정도를 두세 명이 실무진으로 일을 해오다가 지금은 저를 제외하고 사무국장, 실장, 팀장, 연구원, 팀원, 인턴, 마을상담원 등 12명 구조입니다. 크게 나누자면 교육 등 주민참여프로그램과 공모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주민역량실과 연구, 정책 방향, 기획사업을 맡고 있는 전략기획실로 나눠져 있습니다.
다른 곳과 조금 다른 점은 저희 조직에는 연구원들이 있어요. 마을 교육과 연구라는 두 축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그 위에 기획사업, 공모사업을 진행하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런 일들을 마을 연구소가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년에는 마을 연구소를 개방형으로 만들어 보다 활발한 마을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비상근자 형식으로 연구소장도 초빙하고, 마을연구와 관련해서 지역에서 관심을 가진 분들을 모아 마을연구소를 조금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안산센터 와서 놀랐던 점은 실무자들입니다. 정말 일을 잘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한다는 점입니다. 다들 길게는 5년, 짧게는 1~2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응집력도 크고 서로 협업하는 체계는 정말 잘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웃음) 밤 열시, 열한시 퇴근은 부지기수입니다. (안산센터 익명의 활동가에 의해 열두시, 한시 퇴근으로 정정합니다. -필자) 지금 인원에 비해서 일이 많기도 합니다.
안산센터가 만들어진지 올해가 9년째입니다. 마을운동의 지향점을 가진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만든 센터입니다. 마을의 상상력을 갖고 정말 다양한 실험들을 했습니다. 그 실험 중에 잘된 점들을 모아 현재의 사업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마을 일은 벌리면 벌릴수록 늘어나는 특성이 있지요. 안산센터의 확장성은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25개동 전역에서 각 마을 비전을 세울 예정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바빠질 겁니다. 그런 면이 좀 걱정이긴 해요.
Q. 안산센터의 근황을 들려주세요!
제 기억으로 안산은 2004년부터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고, 안산YMCA를 중심으로 관심있는 시민단체가 모여서 공동사업을 개발하고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좋은마을지원센터를 만들기 위한 조례가 만들어 졌고, 2007년도에 마을센터를 개소했습니다.
지금 안산센터는 변화를 모색하는 시점에 서 있어요. 안산센터가 시민단체의 힘으로 만들어져서인지, 정말 다양한 실험을 자유롭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의 간섭 없이 하다보니, 유의미한 결과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안산시 25개 동을 아우르는 정책적 방향, 마을 정책의 큰 흐름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지역사회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시민운동적 경험과 관점만으론 부족합니다. 지금 안산은 그 동안 해왔던 실험들을 25개 동으로 넓혀가려는 노력을 하는 단계이고, 조례도 개정되었습니다. 민관 거버넌스의 축을 바로세우고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행정과 지역의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틀을 만들 생각입니다. 안산 YMCA가 지금 재위탁을 받았는데 앞으로 3년동안 민관 거버넌스의 한 축인 행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어요. 행정도 준비가 되어 있고요.
Q. 행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함께 관점을 갖는 겁니다.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을만들기 운동은 영혼이 필요한 일입니다. 센터와 주민, 행정이 비슷한 관점을 갖고 이를 함께 풀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일을 풀어내는 방법에 있어서는 행정과 중간지원조직, 시민사회가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어요, 평가의 기준도 다를 수 있고. 서로의 차이는 인정해야겠지만, 마을운동을 왜 하는지, 우리는 어떤 것을 지향하지는 끊임없이 토론해야 합니다. 서로간 변화를 위한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그 중심엔 진심과 감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는 건 예산 지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차원이에요. 예를 들어 마을 운동은 부서간 융합이 필요한 사업이 많습니다.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너무 많아요. 서로의 역할에 대해 중간지원조직과 함께 논의하면서 관점과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실은 어렵죠. 사람에 따라 다르고, 담당자 바뀌면 다시 되돌아가고, 현 시스템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걸 마을 운동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을 바꾼다? 주민을 변화시킨다?’라고 말하는데, 바꾸는 것 자체가 목표일까요? 바꾸는 것이 목표가 되면 쉽게 지치게 됩니다. 관점을 가지고 일을 쭉 하다 보면, 그 안에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변화 자체를 목표로 하면 저 사람 변화했는데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문제가 되고, 또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고,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있느냐’는 거에요. 그래서 일반 직원, 관리자가 아니라 활동가인 것이죠.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첫 번째 에요. 그것을 놓치지 않으면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꾸준함이 결국 신뢰를 형성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해요. 시대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그 중심에 마을이 있어요. 마을중심정책이라는 큰 그림을 함께 설계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Q. 여기에서 대전의 강영희 센터장님의 질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강영희 센터장님의 기억 속 이필구 센터장님은 교육과 주민조직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기억하신다면서, 지금도 주민조직화와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지 여쭤보셨어요. 요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교육은 저의 끊임없는 화두입니다. (웃음) 그래서 한편으론 지금 시대에 맞는 시민 교육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안산에 오자마자 민주시민교육이나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의식화와 조직화는 70-80년 민중운동 진영이 주로 사용한 말이지만 낡은 언어가 아닌 지금도 중요한 사회운동의 지향점이고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의식화와 조직화는 필연의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의식화나 조직화의 주체와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운동에 있어서도 주민의 변화를 이루는 주체는 그 자신입니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한데요. 이런 관점에서 의식화, 조직화의 지향점을 갖되,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요즘엔 도시재생, 마을재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지역공동체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도시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도시는 사람을 담고 있는 그릇이죠. 마을 따로, 주민 따로 여서는 안되듯이 공동체 따로, 도시 따로 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도시라는 그릇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상상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끼리만 좋은 공동체, ‘우리끼리 해봤더니 너무 좋아, 이 사람을 만나는 게 행복이야’, 이것이 기본이겠지만 도시의 변화를 함께 꿈꾸는 상상이 필요합니다. 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우리가 담긴 그릇에 대한 변화를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안산 인구가 76만명입니다. 그 중에서 마을운동 하는 주민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3%는 아직 갈길이 멀구요. (웃음) 3%를 만들기 위한 토대전략도 필요하지만, 도시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철학과 가치 비전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하는 방법도 고민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걸 누가 할까요? 그 동안에는 행정가, 전문가, 정치인들이 좌지우지 하면서 도시를 마음대로 설계 했다면, 이제는 이 역할을 마을로 가져와야 합니다. 현재까지 다양한 마을운동의 경험들이 녹여져야 합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에요.
Q. 이 고민을 사업으론 어떻게 풀어낼 계획인가요?
요즘 여러분들께 내년은 안산 25개동에서 마을계획, 마을비전을 세우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마을계획을 진행한 일동이라는 곳이 있어요. 마을계획 세우는데도 열 달 걸렸는데, 25개 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은 있습니다. (웃음) 그런데 저는 ‘비전’을 함께 생각해보고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주민 스스로 우리 마을의 비전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 그것을 드러내고 구체화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서로 납득하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동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 같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그것보다 조금 더 구체화된 비전을 25개 동에서 세우는 것이 첫 번째 단계 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비전에 맞춰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이건 의제를 설정하는 단계죠. 이런 과정이 1년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엔 이 의제를 추진할 추진주체들을 구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마을 주민들에 의해서 실천하는 과정을 만들려 합니다. 이런 과정을 매끄럽게 잘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마을 운동은 아마추어리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어설퍼야 해요. 그래야 특정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어요. 중간지원조직은 이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돕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봅니다.
Q. 비전설립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지난 11월에 진행된 <일동 주민 300인 원탁회의> 과정과 결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안산의 마을운동은 예전부터 도시디자인, 도시계획 분야를 많이 다뤄왔어요. 활동가들과 도시분야나 건축설계 분야의 대학원생들이 같이 토론하면서 도시문제를 풀어나가고 도시를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이것이 도시디자인대학인데 안산은 초기부터 많이 했었고 동별로 실험도 많이 했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니까 마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히게 된 거죠.
그렇다면 마을계획은 누가 세우지? 주민자치위원회들이? 아니면 또 다른 추진세력이 필요한가? 고민하다가 ‘마을계획은 아무 곳이나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민공동체가 형성된 곳에 마을계획을 세우자’는 방향이 만들어졌고, 그러다 보니 사1동, 사2동, 일동 세 군데에서 마을계획을 세우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최근에 진행된 일동 마을계획은 수립과정부터 마을활동가, 주민자치위원, 행정이 함께 모여 의제별 분과모임을 만들었고, 전체 주민이 모이는 300인 원탁회의를 진행했습니다. ‘300인 원탁토론을 했고 10여개월의 과정에서 마을 의제를 만들었다’가 중요한 점이 아닙니다. ‘마을 의제를 만드는데 참여한 주민들끼리 관계망이 어느 정도 만들어 졌는가? 이후 정해진 의제를 함께 실천할 추진체를 어떻게 만들까’가 핵심입니다. 5년, 10년간 긴 호흡으로 이 일을 함께 할 추진 주체를 모으고 형성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결국, 주민들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협력하는 주체들이 형성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실적 어려움은 많지만 주민자치위원들, 풀뿌리 운동 조직들, 유관기관들이 ‘의제를 풀어내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공동의 비전이 도출하는 것, 이것이 마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Q. 사1동의 300인 원탁회의> 이전에 열린 지역대화모임 후기를 봤습니다. 일반적인 마을공동체나 주민 모임 뿐만 아니라 장애인복지관, 학교와 학부모회, 주민센터, 주민회 등 다양한 지역구성원들이 함께 했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이 모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의 확대 가능성도 궁금합니다. 300>
일동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활동 경험이 많은 분들이 많았던 거죠. 풀뿌리 운동을 하셨던 분이 주민자치위원이시기도 하고, 여러 방식으로 마을일을 중복해서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연결 짓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습니다. 또 복지관 쪽은 복지마을만들기라고 해서 지난 몇 년간 복지사 대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논의하는 모임을 꾸준히 해왔어요. 특히 안산은 지역사회복지관점에서 시설복지를 넘어서 마을 안에서 복지관, 복지사들의 역할을 고민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운동이나 부녀회 분들과 공동체운동을 고민하는 분들의 결이 맞지 않은 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15년 20년 전의 운동방향은 ‘침투와 장악’이었어요. 훈련된 회원을 아파트입주자회의에 들여보내고, 대표회장을 시키는 방식. 그런데 이러면 1년에서 2년을 못 버터요. 왜냐하면 그 안에서 대화하는 방식, 가치가 너무 다르니까 그 사람은 ‘아, 이제 못해먹겠어’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닌 거죠. 누가 잘못하고 있다거나, 변화를 시켜야 한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유관기관에 계신 분들을 훌륭하다고 봐야 해요. 이분들이 관점이 어떻든 간에, 또 활동 동기가 어떻든 간에, 어쨌든 자기 시간 내서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 분들을 변화 시키겠다는 관점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 그분들이 새로운 경험들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모임이든지 늘 빅마우스인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 사람만 없어지면 일이 잘 될 것 같은데’ 하는 사람이 있죠. 근데 그 사람은 안 없어져요. 없어져도 다른 사람이 등장합니다. (웃음) 이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로 풀어내면 된다고 봅니다. 과거에 200원 토론 같은 방법을 썼는데요. 각자 200원을 들고 하는 토론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한번 발언할 때 100원을 던지고, 모든 사람이 동전을 던져야 토론이 끝난다는 간단한 원칙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두 한번 이상은 발언해야 하고, 동전 지불로 발언기회를 얻되 의견을 듣고 싶은 상대에게 동전을 넘길 수 있도록 하는, 이 정도의 원칙만 가지고 토론을 하면 빅마우스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주 작은 경험이지만 이런 경험들을 늘려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런 방법들로 새로운 풀뿌리 단위의 주체를 발굴해내고, 기존에 활동을 하시던 분들이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고 재미있어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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