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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토론회] 한국 지역 먹을거리 운동,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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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먹을거리'에 푹 빠진 사람들…"이제 선택 아닌 필수"
[토론회] 한국 지역 먹을거리 운동, 어디까지 왔나

하루가 멀다 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광장이 경찰의 입맛에 따라 봉쇄되고, 인터넷 역시 '틀린 말'을 하면 구속되는 사회가 됐으니, '민주주의'가 다시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될 만도 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렇게 '초미의 관심사'가 된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먹을거리다.

세계적 식량 폭등,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중국 멜라민 파동 등 지난해부터 일어난 갖가지 사건은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local food)' 이런 온갖 '파동'의 전후로 가장 '뜬' 키워드 중 하나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먹자"며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자고 주장하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정책으로 자리매김하는 단계에 와있다. 식량 위기와 지구 온난화, 석유 고갈 등의 문제로 선진국에서는 지역 먹을거리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고 있다.

2007년 <프레시안> 기획 기사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이 운동은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다채로운 시도를 주요 언론은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어디쯤 와 있을까?

지난 25일 지역재단이 주최하고 <프레시안>이 후원한 가운데 열린 '로컬푸드 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실천 과제와 방도' 포럼은 국내 지역 먹을거리 운동의 현 주소를 생생히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서울 서초구 지역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한 전국 각지의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흥미진진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의 사례였다.



▲ 지난 25일 지역재단이 주최하고 <프레시안>이 후원한 가운데 열린 '로컬푸드 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실천과제와 방도' 포럼은 국내 지역 먹을거리 운동의 현 주소를 생생히 알 수 있는 자리였다. ⓒ프레시안

친환경급식센터 설립한 원주…"식량정책협의회 도모"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조세훈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은 강원도 원주의 사례를 소개했다. 원주는 국내에서 가장 생협과 먹을거리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지역 중 하나로 2003년에는 13개 지역 협동조합이 모여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창립했다.

조세훈 국장은 "생협 운동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최근에는 과연 생명 농업,친환경 농업, 유기 농업이 지역 회생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가 어려웠다"며 원주 지역 내에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조 국장은 "생협은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생산지 구조가 돼 있고 지역 내에서는 제대로된 역할을 못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2000년을 전후로 웰빙 바람을 타고 생협이 많이 성장했지만 지역 사회는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생협에서 취급하는 것도 가공품이 대부분이고 지역산이 없는 현실에서 유기농보신주의로 흐를 수 있지 않은가 돌아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세훈 국장은 학교 급식부터 지역 먹을거리 보급에 나서고 있는 원주의 현황을 설명했다. 원주에서는 2005년 안전한 먹을거리 공급을 명시한 학교급식 조례가 제정됐으며, 2007년에 약 1억 원 가량의 지역농협 쌀을 학교에 공급했다.

이후 2008년 2월에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단 형태로 친환경급식지원센터를설립해 현재 농촌 지역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등학교, 상지대 구내식당 등에 연간 150톤 규모의 지역산 무농약쌀을 공급하고 있다. 조세훈 국장은 "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단순히 식재료 공급이 아니라 유통, 가공, 홍보까지 아우르는 비지니스 역할 하면서 지역식량정책협의회까지 나가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따라 지역 먹을거리 운동 방식은 달라질 것 같다"며 "원주에서 이뤄지고 있는 농민장터는 실제로 농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한계가 있더라"고 덧붙였다.

춘천의 공동체지원농업 실험…"생산자 조직화 어렵더라"

춘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이강익 정책기획국장 역시 2008년부터 강원도 춘천 내에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는 "대구의 농민시장 사례를 보니 상근자가 너무 고생을 하고, 생산자 조직화가 잘 되지 않는 문제를 알 수 있었다"며 "춘천에서는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CSA(공동체지원농업)와 반찬가게, 그리고 이주여성들과 함께 하는 다문화카페를 구상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시작한 춘천의 공동체지원농업의 이름은 '생명밥상'이었다. 지난해 7월~12월까지 운영됐던 생명밥상에는 40여 가구가 소비자 회원으로 참가했고, 월 평균 6만 원의 회비를 내고 주1회씩 먹을거리를 배송받았다.

이강익 국장은 "소비자 회원들 밥상에 지역 농산물이 들어가는 비중이 높아졌고,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무엇보다도 지역 먹을거리 운동의 필요성을 지역 내에 확산시켰다"고 자평했다. 그는 "그러나 초기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도 많았다"며 "사업 초기에 영농계획을 소비자와 농민이 같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쉽지 않았고 품목 구성 과정이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하면, 소비자는 소비자 주권론을 내세워 생산자가 요구에 맞춰주길 원하고, 또 생산자는 반대로 '생산자 주권론'이 강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1차년도 여름에는 계속 채소로 구성된 상자를 배송했더니 소비자회원이 '내가토끼냐'라며 화를 낸 적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한 공동체지원농업을 막상 해보니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생산자 조직화였다"며 "좋은 품질을 내놔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농민들이 오히려 안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공동체지역농업 프로그램에 내놓기도 했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 깃발 올리는 청주…"제대로 하려 사회적 기업도 포기"

박대호 청주 일하는공동체 지역디자인 팀장의 경우는 이제 막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시도하는 단계였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면서 지역 먹을거리 이야기를 듣게 됐고, 지역 내 소비 구조를 만드는 경제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그렇게 사회적 기업 아이템으로 연구하면서 지난해부터 지역 먹을거리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청주 지역에는 건강한 농민이 많다"며 "몇몇 농민은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같이 해보자고 말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직까지 농민, 소비자 모두 이 운동을 잘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굉장히 호의적"이라며 "올해부터 다양한 지역단체가 참여하는 '로컬푸드 아카데미', '로컬푸드 포럼'을 통해 공론화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역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하는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실현된 성과와 사례를 많이 보았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얘기되고 있는 지역 먹을거리에는 선언적, 과제적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대호 팀장은 보다 더 제대로 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을 위해 지역 내 재단에서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사업권을 포기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으로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접근하다보니 어느 순간 장사를 하려 하고 있더라"며 "사회적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병혁 대구경북지역먹거리연대 사무국장의 발표가 이어졌다. 대구는 2007년 농민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경험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김병혁 국장은 "지역 먹을거리는 지역 기반으로 생산, 소비, 유통을 하자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먹을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리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산자 조직이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 일반적으로 농민들은 직거래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김병혁 국장은 "또 유기농산물로만 하면 가격 장벽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지역 먹을거리라는게 소비자들이 쉽게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구조 만들지 못하면 좋은 이야기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문화 속 지역 먹을거리 뿌리 어떻게 내릴까"

이날 포럼에서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참가자들은 "수입 농산물의 안전성 논란을 비롯해 세계 농식품 체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아직 활발히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 않다"며 저마다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발제를 맡았던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현재 농업이 대규모 단작 체계이고, 소비 역시 그런 구조에 많이 길들여져 있다"며 "장터 가서 물건 조금씩 구매하기 보다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등 지역 먹을거리가 뿌리 내리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윤병선 교수는 "농민들이 생산에만 몰두하는 단계를 넘어 유통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인식을 스스로 해야 한다"며 "또 다품목 소량 재배를 하면서 농민들 사이에 다수의 품목을 서로 분담해 생산하는 체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즉 소비자들도 지역 먹을거리를 단순히 안전하고 신선한 먹을거리로 인식하거나 단순히 농민을 도와주는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차원을 넘어야 한다"며 "한편으로는, 지역 먹을거리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송동흠 사무국장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지역 먹을거리를 굉장히 큰 운동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실상 아직 한국에서 그 위상은 '마이너'"라며 "더군다나 대형마트가 자리잡으면서 도매시장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역 먹을거리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지역 먹을거리운동으로 너무 '전국'을 커버하려고 하다 보면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을까"라며 비록 아직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이현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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