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세계연극의 메카로 도카무라(利賀村)...841명 마을 축제에 14만명 관광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도시화율은 88.4%. 홍콩 등과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반면 농촌인구는 87년 1000만여 명에서 지난해 500만 명 정도로 줄었다. 여기에 중앙주도의 지역개발과 지역 내 성장지상주의에 의해 만연한 난개발.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조차 “더 이상 이런 식의 불균형과 성장제일주의만으로는 오히려 성장 동력을 잃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 도카연극페스티벌의 주 무대인 야외극장과 극장 뒤로 보이는 갓쇼 가옥.
 ‘유명세=인구 증가' 기대 접어야

행정자치부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내년부터 일본의 마을 만들기와 유럽의 창조도시들을 본떠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시범사업을 할 예정이다. 시범마을에 선정되면 적지 않은 예산이 6년간 주어지지만, 과연 일본처럼 주민이 중심적이거나 주민참여가 전제되는 형태가 될지는 처음부터 의문을 낳는다. 지금까지의 관성을 벗어던지지 못할 경우 한국판 마을 만들기는 자칫 예산 따먹기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7일까지 9일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일본연수’에 참여해 살펴본 일본의 구체적인 마을만들기(마시쓰쿠리) 사례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이를 통해 우리 지역 현실과 한국판 마시쓰쿠리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다.

82년에 전통가옥 ‘갓쇼’ 활용해 연극축제 시작

일본 주섬인 혼슈 북쪽, 북일본 혹은 북륙 지역으로 불리는 도야마(富山)현. 현청이 있는 도야마시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산 속으로 들어가면 도카무라(利賀村)가 나온다. 2004년까지 독립시였던 도카무라는 2004년 행정조직합병과정에서 인근 8개 시정촌(市町村)과 합쳐져 난토시의 일부가 됐다.

임야가 94%로 강원도 두메산골보다 더한 깡촌. 겨울에는 평균 강설량만 해도 4m가 넘는다. 예전에는 1년에 절반은 쌓인 눈으로 다른 지역과 단절돼 스스로‘새들도 다니지 않는 육지의 고립된 섬’이라고 불렀다. 숯 굽는 일, 계단식 논농사, 약간의 소바(메밀) 농사 이외는 기대하기 힘든 환경.

일본 고도성장기인 1960~1970년대에 젊은이들 대부분이 마을을 떠났다. 태평양전쟁을 피해 산으로 들어온 피난민을 포함해 1950년(소화 25년) 3550명이던 인구수는 1965년 2510명, 1970년 중반 이후부터는 1000명대로 내려갔다. 2006년 4월 현재는 841명이다. 여기에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32.2%인 초고령 사회의 도카무라. 여기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35년 동안 이곳에서 공무원을 지낸 도카무라 센터장, 나카타니 노부이치(中谷信一)씨는 “60년대 중반 들어 텅빈 마을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마을을 살리려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면서 “이 곳의 전통가옥인 갓쇼(合掌) 가옥을 없애고 새 집으로 단장하자는 이들, 이 가옥을 보존하자는 이들이 심심하면 서로 충돌했다”고 말했다. 그 충돌의 결과는 전통가옥 보존 팀(?)의 승리.

세계연극 교류의 장…92년부터 소바박람회도

눈이 많이 내려 눈이 쌓이지 않고, 눈 무게도 줄이도록 손바닥을 맞댄 형태의 지붕으로 된 갓쇼 가옥. 여기에 지붕을 이엉으로 엮어 조금이나마 눈 무게를 더 덜도록 했다.

보존 팀의 승리(?) 속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빈 갓쇼 가옥을 현재 도카연극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옮겼다. 1973년에는 옮겨진 이 가옥(도야마현 도카예술공원)을 활용할 방안을 전국적으로 공모한다. 이 공모에 일본 내 전위적인 연극연출가로 이름난 도쿄 와세다 극장 단장이던 스즈키 타다시 연출가가 이 곳을 연극 연습실과 극장으로 쓰겠다고 나타난다.

그리곤 1976년 이 곳으로 극단 식구들과 함께 들어온다. 스즈키 단장은 이곳에 옮겨진 빈 가옥을 고쳐 연극무대를 만들었고, 1982년부터 도카연극페스티벌을 하게 된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카연극제의 주 무대로 알려진 야외극장은 당시 2억엔을 들여 1회 연극제 때 만들어졌다. 이 연극제의 시작은 오늘의 도카무라를 있게 했다.

해마다 8월 중 보름이 넘도록 하는 도카연극페스티벌은 지난해에는 유료관객이 1만 명이 넘었고, 세계연극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즈키 메소드를 전수하는 연극학교, 각종 연극공연과 토론회로 넘쳐난다.

도내 주요 연극제보다 유료관객수는 더 적다.

“35년 간 축제…‘주민 늘리기’ 는 실현 불가능”

하지만 이 페스티벌은 아시아 연극의 중심부라는 일본연극의 한 해 주요 흐름을 논의하고, 세계연극의 흐름을 교류하는 중요한 장이 됐다. 때문에 동서양 연극인들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유명 연극제로 자리를 잡았다.

스즈키 단장이 이끄는 극단 스코트 단원인 세이야 요시이(吉井省也)씨는 그들이 이룬 성과와 자부심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30여 년 전 오지에 들어와서 우리와 도카 민들이 이룬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이었다.”

‘도카무라 = 세계적인 연극제’라는 명성에 힘입어 지금은 겨울에도 사람들을 이 곳으로 불러모을 방안이 고민된다. 도카무라 주민들은 지난 1985년부터 동네 축제였던 소바 마쓰리를 확대해, 1992년부터는 세계소바박람회를 열었다.

7억 엔의 예산으로 도카시 직원을 중심으로 2년이란 기간을 두고 준비해 지난해에는 인구 1000명도 되지 않는 마을에 13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도카민이나 공무원들에게서조차 도내 일부 농어촌지역 시군처럼 실현 불가능한 정주인구를 늘리겠다는 헛구호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축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도, 그것이 정주인구를 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노부이치 도카무라 행정센터장은 솔직한 한마디로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만약 갓쇼가옥 활용을 통해 연극제개최나 소바 박람회를 열지 않았다면 마을조차 사라졌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35년 경험 속에서 이런 산촌에 정주인구를 늘리겠다는 기대는 접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전국 지역신문 종합평가 결과 <경남도민일보>가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됨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