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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숲섬

홍제동 개미마을

벽화로 새 단장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개미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마을이다.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가운데 한 곳이다. 홍제역 2번 출구 앞에서 마을버스 7번을 타고 좁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면 닿는다. 개미마을의 공식 주소는 홍제3동 9-81. 마을 면적은 1만5,000평 정도 된다. 210여 가구 4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개미마을은 6·25 전쟁 이후 만들어졌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 임시 거처로 천막을 두르고 살았다. 당시에는 ‘인디언촌’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마을 같아서였다고도 하고, 인디언처럼 소리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인디언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983년 ‘개미마을’이라는 정식 이름이 생겼다.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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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미마을에 벽화가 그려진 후 어둡던 마을 분위기는 산뜻하게 바뀌었다.
2 높고 가파른 개미마을의 계단. 그나마 이렇게 그림이라도 그려진 게 위안이다.
3 담 아래핀 꽃송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4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 개미마을의 잿빛 벽은 화사한 그림으로 채워졌다.

높고 가파른 마을

개미마을은 참 가난한 동네다. 주민들 대부분이 일용직에 종사하거나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독거노인도 부지기수다. 해마다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 전달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 개미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곧 쓰러질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대부분 40~50년 이상 된 집들로 보인다. 입구에서 올려다 본 마을은 마치 성곽을 닮았다. 산 아래로 삐져나온 커다란 바위 위에 집이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다. 바위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나 있는 것도 보인다. 대문이 바위 사이에 나 있는 경우도 있다.

마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다. 마을버스도 커다란 소리를 내며 겨우겨우 올라간다. 입구에서 20여 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면 마을 정상부다. 공중화장실이 덩그러니 서 있다. 마을에 화장실이 없는 집들이 아직 있어 이렇게 공중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현재 공원 조성공사로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아래에서 볼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멀리 북한산과 안산 등 서울의 산과 내부순환도로 등이 바라보인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로는 빌라와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리고 여느 달동네가 그러하듯 낡은 지붕과 지붕이 면을 겹치고 있다. 집과 집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을 곳곳에 51가지의 그림 그려져

개미마을 골목의 얼개는 간단하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큰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한마루길. 이 길 양 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를 친다. 골목의 이름도 모두 한마루길이다. 한마루길에는 계단이 참 많다. 모든 계단은 높고 가파르고 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어디서 끝이 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계단 하나가 한번도 끊기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은 몇 번이나 다리를 쉬며 집으로 가곤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연탄을 지고 이 계단을 올라가야 해. 하지만 그건 이제 이력이 나서 괜찮아. 달동네 사는 게 왜 힘든 줄 알아? 바로 겨울 추위야 추위.” 계단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말이다. 산 아래 마을인 덕택에 여름은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찬바람이 문틈으로 쌩쌩 불어오는 겨울은 정말 힘들단다. “길이라도 얼어 봐,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

그나마 이처럼 스산하던 개미마을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30일 이후. 마을에 미술을 전공한 대학생 130여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손에 붓을 잡고 잿빛 담벼락에 하나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대문구와 금호건설이 마련한 ‘빛 그린 어울림 마을’ 프로그램이다. 성균관대, 건국대, 추계예대, 상명대, 한성대 등 5개 대학 미술 전공 학생들이 참여해 ‘환영’, ‘가족’, ‘자연진화’,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주제로 마을 곳곳에 51가지의 그림을 그렸다. 주민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

학생들이 작업한 이틀 동안 마을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금이 가고 낙서로 가득했던 잿빛 벽은 분홍색과 하늘색, 푸른색, 초록색으로 산뜻하게 칠해졌다. 그 위에 강아지, 바다, 나무, 꽃 등 각양 각색의 그림이 그려졌다. 처음에 그림 몇 개 그린다고 마을이 달라질까 하며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마을 분위기가 바뀌자 표정이 환해졌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는 “동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동네에 산다고 하기가 좀 그렇기도 했지. 친척들 오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그런데 이렇게 그림 그리고 나니까 마을이 몰라보게 좋아졌어. 이게 다 학생들 덕분이지, 뭐.” 입 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삼삼오오 모여 벽과 골목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을 연신 렌즈에 담는다. 예전의 개미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통영 동피랑이라는 곳엘 가봤는데 거기보다 이곳 개미마을이 훨씬 예쁜 것 같아요.”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개미마을을 알게 됐다는 한채민씨(28)는 이렇게 말했다.

개미마을에는 텃밭이 참 많다. 텃밭마다 고추와 상추, 대파가 심어져 있고 각종 채소가 자란다. 가을볕 아래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 다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어. 여기 텃밭들 봐. 시장 안 봐도 일년은 너끈히 먹고살아.” 텃밭을 가꾸던 한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며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 넘치는지 알아? 누가 아프면 돌봐주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하루하루 살아가.” 개미마을에 저녁이 왔다. 산등성이 마을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빛은 참 따스했다. 마치 개미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발행일

발행일 : 2009. 10. 08.

출처

제공처 정보

  •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시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 사진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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